화사한 햇살이 유리창을 넘어 그녀의 볼에 와 닿았다. 그녀가 수줍은 미소를 띤 채 눈치를 살피고 있다. 도톰한 입술이 쭈뼛쭈뼛,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눈빛도 초롱초롱 빛나고 있다. 하지만 연인과 사랑을 속삭이기엔 너무나 생뚱맞은 장소다.


그녀를 관찰하고 있는 곳은 어떤 학회가 주최하는 춘계 학술대회장이다. 대학원에서 ‘짬밥’을 먹었던 기자는 한 눈에 그녀가 대학원 새내기라고 짐작했다. 구두 발표가 아니고서야 포스터 발표를 하는 사람이 정장을 곱게 차려 입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지랖이 넓은 기자는 곧장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석사 1학기 째죠?”, “헉! 그걸 어떻게….”, “제가 첫 관람객인 듯 싶은데, 연구 내용 좀 소개해 주세요.” 대부분의 포스터 발표가 그러하듯 관람객은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다른 대학 교수나 대학원생이 대다수다. 하지만 이런 장소에 처음 온 그녀로선 실험실 선․후배밖에 질문해줄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이 때문일까? 그녀는 기자에게 또박또박하고 친절한 어조로 포스터에 나열된 연구주제와 서론, 재료 및 방법, 실험결과, 고찰을 설명해줬다. 이에 기자는 되물었다. “이 실험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거죠?”, “왜 이 실험을 하게 된 겁니까?”


잠시 머뭇거렸던 그녀는 “대학원 합격통보를 받은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연구한 내용을 (본인이) 정리했을 뿐”이라며 “이 연구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 아직 모른다”고 답했다. 연구발표자도 해당 연구의 의미를 모른다면 누구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말인가?


대학원생 가운데는 입학할 때 지녔던 포부와 달리 실험실 생활에 파묻혀 꿈과 야망, 실험의 의미조차 망각하곤 한다. 자신의 연구가 학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실험을 확장해 박사 이후에는 어떤 연구가 이어질 수 있을지 고민하기도 솔직히 벅차다. 하지만 연구자 스스로 어디를 향해 가는지 모르면서 좋은 연구 성과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에 대해 4월 20일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한 최진호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성적 우수자가 뛰어난 연구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며 “시험에 나올 문제의 답을 외우는 것과 실험한 결과를 해석하는 능력은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과학은 지식을 암기하는 학문이 아니라 인간의 궁금증을 해결하는 과정이다. 그만큼 기존의 지식을 뛰어넘는 창의적인 사고훈련이 돼 있어야 한다. 실험에 몰두하고 있는 당신, 그대가 작성하고 있는 논문의 의미는 무엇인가?


글_정서금영 기자 symbious@donga.com 

*이 글은 고대대학원신문 2007년 5월호 ‘호원춘추’란 코너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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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서금영
 

18대 총선에서 과학기술인 출신 국회의원 당선인은 지역구 9명, 비례대표 7명으로 확인됐습니다.


정당별로 살펴보면 한다라당 지역구 6명, 비례대표 5명, 통합민주당은 지역구 3명, 비레대표 1명, 그리고 창조한국당 비례대표 1명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과학기술인 출신 당선인은 매우 소수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기술인 출신이란 대학에서 이공계를 전공하고 연구자나 엔지니어로 연구 활동에 몸담았던 사람을 말합니다.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이런 기준을 따지면 서상기(대구 북을, 국회의원, 전 한국기계연구원장), 박영아(송파 갑, 한국물리학회 부회장, 명지대 물리학과 교수), 배은희(비례대표 3번, 벤처기업인, 리젠바이오텍 대표이사, 전 KIST 선임연구원) 당선인이 해당합니다.


한나라당

신상진(성남 중원, 국회의원, 전 대한의사협회장), 구본철(인천 부평을, 인하공대 전기전자공학부 겸임교수, 전 KT상무), 윤석용(강동을, 전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 한의사), 정의화(부산 중동, 국회의원, 의사), 조문환(비례대표 14번, 의사, 현 고신대 의대 외래교수), 손숙미(비례대표 15번, 가톨릭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현 대한영양사협회장), 원희목(비례대표 16번, 대한약사회장, 한국보건의료인 국가시험원 이사장), 이애주(비례대표 17번, 현 병원간호사회장)


통합민주당

변재일(충북 청원, 국회의원, 전 정통부 차관), 조경태(부산 사하을, 국회의원, 토목공학 박사), 김춘진(전북 고창부안, 국회의원, 치의학박사, 전 대한보건협회 부회장), 전혜숙(비례대표 5번, 전 경북약사회장, 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임감사)


창조한국당

이용경(비례대표 1번, 미국 UC버클리대 전기공학박사, 전 KT 사장)


이처럼 대부분 식약계 대표나 전직 과학기술계 관료는 엄밀한 의미에서 과학기술인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현장에서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과학기술인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다음번 19대 총선 때는 반드시 과학기술인 출신의 당선인이 많이 배출되기를 다시 한번 기대합니다.

글_정서금영 기자 symbio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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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서금영
 

지난 10일 서울 코엑스에서 ‘제3회 창의적진흥연구단 성과전시회’가 열렸다. 국내 최고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모두 65개 연구단이 자신의 연구 성과를 전시하며 일반인에게 친절한 소개를 해줬다.


특히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서울대 물리학과 강병남 교수가 이끄는 ‘복잡계네트워크연구단’이었다. 예전에 미국 노트르담대학 물리학과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 교수가 쓴 ‘링크(Linked)’라는 책을 읽으며 느꼈던 흥분을 잊을 수가 없었다.


복잡계네트워크란 한마디로 우리 사회의 다양한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맥이나 학맥, 도로망, 인터넷연결망 같이 그동안 쉽게 접해왔던 것들에서 물리학자들은 새로운 관계를 찾아냈다.


가령 자신을 둘러싼 인맥을 복잡계네트워크로 설명해 보자. 개개인의 사람을 점으로 표시하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선으로 연결해 보자. 그럼 무수한 거미줄이 생겨날 것이다. 아웃사이더라면 거미줄의 말단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정보나 에너지, 지식이 거미줄로 들어가는 시작점이 되거나 가장 뒤늦게 전달받는 종착점이 될 것이다. 반면 마당발인 사람이라면 모든 정보는 그를 통과하게 될 것이다. 마당발인 사람은 그 네트워크의 ‘허브(hub)’인 셈이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물리학자들은 △20대 80의 법칙 △바이러스의 유행 △웹사이트의 분화현상 △부익부 빈익빈 현상 등을 설명해 왔다.


나는 복잡계네트워크연구단의 부스에 들러 대학원생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기자는 곧바로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이미 알려진 주제들을 가지고 원론적인 탐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인체 내 수많은 단백질들이 다양한 효소반응에 의해 조합을 이루고 있는데, 암을 유발하는 단백질의 고리를 찾는다든지 하는 방법이다.


한 연구원은 단백질의 접합이 오른쪽으로 90도 회전할 수도 왼쪽으로 90도 회전할 수 있다며 계속 접합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일단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기는 몹시 어려운 일이다.


나는 그 연구원에게 ‘새로운 연구주제’를 제안했다. 다음은 기자가 연구원과 대화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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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제가 올해 30살인데, 대학 동기들을 살펴보면 30살을 기준으로 그전에는 연애결혼을 많이했어요. 근데 30살이 지나니까 누군가의 소개로 애인을 만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저 또한 여기저기서 괜찮은 남자나 여자를 소개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습니다.


따라서 20대에는 연애결혼을, 30대에는 중매결혼을 많이 한다는 게 제 결론이에요. 이를 확인하려면 연령별 인맥 네트워크를 파악하고 그런 인맥에서 어떻게 연애결혼으로 이어지는 지를 알아내면 우리 사회의 결혼 연령을 낮출 수 있을 것 같아요.


연구원A : 네, 맞습니다. 그건 통계청 홈페이지에 있는 자료를 활용하면 손쉽게 확인할 수 있죠.


기자 : 요즘 사회적으로 저출산 고령화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으니까 중매결혼의 네트워크를 연애결혼의 네트워크로 변화시키면 될 것 같아요. 지난 2년 동안 쌍춘년과 황금돼지해 덕분에 결혼을 많이 했고 그래서 출산율도 높아졌잖아요?


연구원B : 그런데 ‘사회네트워크(Social network)’는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인체 단백질이나 효소처럼 조작이 가능하지 않잖아요.


기자 : 제가 대학 때 전공이 ‘생태계생태학(Ecosystem Ecology)’이에요. 생태학에선 ‘최소존속개체군’이란 개념이 있죠. 어떤 생물종이 100년이 지나도 동일한 마릿수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마릿수를 말하는데, 보통 포유류에서는 100마리 정도로 보고 있어요. 그 이하가 되면 근친상간이 일어날 빈도가 높아져 자연적으로 멸종에 이를 수 있다는 개념이죠.


근데 수컷 99마리에 암컷 1마리라면 이건 의미가 없겠죠? 다시 말해 번식 가능한 마릿수가 많아야 최소존속개체군의 질적인 숫자가 늘어나는 거예요. 대학 때 제가 PC통신 하이텔 고려대 동호회 운영자나 동아리 회장을 해 본 경험상 인간 커뮤니티는 5~10명 가량의 ‘명랑씩씩’회원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허브 역할을 할 특이점(Spot)인데, 그런 사람을 중매결혼 구조의 네트워크 곳곳에 만들면 자연히 연애결혼 중심의 네트워크로 변화될 것입니다.


연구원A․B : 네,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특이점의 영향력이 커져야 해요.


기자 : 그렇죠. 중앙의 허브나 특이점 역할을 할 서브허브의 영향력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시행한다면 효과가 있겠죠? 어쨌든 여러분이 이런 연구를 해주시면 학문의 사회적 유용성을 높이고 일반인들도 여러분의 연구성과에 좀더 귀기울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구원A․B․C : 흐흐. 그렇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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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은 학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하는 것은 원론적으로 맞는 얘기다. 하지만 학문이 사회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면 학문은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 측면에서 학자는 사회의 다양한 세력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사회가 필요로 하는 해답을 찾는 일에 골몰해야 한다. 참고로 이들 연구원 중 한명은 기자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돈의 유통구조를 공부하는 경제학자가 돈 많이 버는 것은 아니잖아요? 마찬가지로 네트워크를 연구하는 우리라고 해서 네트워크가 넓은 것은 아니죠. 오히려 폐쇄적일 수 있어요. ㅋㅋ”


솔직히 이런 답변은 바른 학문의 자세가 아니다. 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복잡계네트워크연구단이 얼마나 폐쇄적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를 발견했다. 참고로 국내에서 복잡계네트워크를 연구하는 물리학자 집단은 서울대 2팀과 서울시립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모두 4그룹이다.


나와 이야기를 나눈 연구원들은 모두 남자였다.


기자 :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남자인데, 혹시 다른 연구팀과 교류를 통해 애인이 생겼다거나 생길 예정인 분은 없나요?


연구원A : -__-; 아쉽게도 없습니다.


기자 : 흠. 예전에 보니까 KAIST에 여자분이 한 분 계신 것 같던데?


연구원B : 맞아요.


기자 : 그분은 어느 연구단에 속한 분과 사귀고 계세요?


연구원A․B․C : (서로 눈치를 보다가) 연구단 내부에서 그분과 사귀는 남자가 없어요.


기자 : 아마 외부에서 찾으신 모양이군요.


연구원A․B․C : ….


이들 연구원들은 이렇듯 내부의 인적 자원마저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을 자원으로 표현해서 다소 물의를 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흔히 운동권 학생들이 주창하던 구호를 다시끔 떠올릴 필요가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문제다”


과학자라고 해서 과학책이나 학술저널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문제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글_정서금영 기자 symbio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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