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글에 대해 댓글을 쓰신 분들께 답변을 드립니다.


1. ‘라일락김’님께서 공판의 주요 내용이라고 올리신 부분은 서울대 조사위의 보고서에 대한 조작 의혹입니다. 그러나 황 박사 사건에서 중요한 부분은 서울대 조사위가 줄기세포 1번에 대해 처녀세포라고 판단했든 안했든 그것은 중요한 사항이 아닙니다.


사건의 핵심은 2004년과 2005년 사이언스에 게재한 논문에 황 박사가 고의로 조작한 논문을 제출했는가 여부입니다. 1번 세포주가 정말 줄기세포일 수 있고 또는 처녀증식 세포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미가 없고 황 박사 일부 세포가 오염된 것을 알고서도 오염되지 않은 것처럼 썼다면 사실을 다르게 오도한 것이므로 명백한 연구 부정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2. ‘동방의 등불-코리아’님, 세계과학계에서 황 박사를 용서한 적은 없습니다. 그는 네이처나 사이언스에 논문을 투고하더라도 아마 거부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원래 논문을 거짓으로 투고하면 ‘양치기 소년’처럼 진실을 이야기해도 믿지 않는 게 당연합니다. 특히나 학자적 양심을 걸고 논문 한편 한편을 투고해야 하는 과학계에서 황 박사처럼 오염된 줄기세포를 오염되지 않은 것처럼 쓰는 행위는 명백한 부정행위입니다.


‘동방의 등불-코리아’님의 지적처럼 “논문을 작성할 때, 모두 줄기세포 몇 개 만들었는데 몇 개는 오염사고로 죽었고 현재 몇 개 남았다로 논문을 작성하는 것이 정답이고, 그러지 않고 이유와 과정이야 어찌댔던 이미 죽은 것을 살아있는 것처럼 부풀려 넣은 것은 과학자로서 잘못한 일이 맞고,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러나 “이 잘못에 대해서 황 박사는 통상 과학계의 상식과 관례를 훨 뛰어넘는 징벌을 받았다는 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황 박사 이전에도 독일인 과학자 얀 헨드릭 쇤이 “실수로 그래프를 바꿔 보냈다. 하드디스크 용량이 부족해 관련 자료를 삭제했다”며 논문 조작의혹을 부인했었죠. 그러나 실험 샘플은 모두 복원할 수 없도록 훼손되거나 버려진 상태였습니다. 황 박사도 “사진 중복은 인위적 실수다. 줄기세포는 뒤바뀐 것이며 영롱이 관련 자료는 이사 중 분실했다”며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답변만 내놓았습니다.


쇤은 근무하던 ‘벨 연구소’에서 해고당했으며 2년 뒤에는 박사 학위까지 박탈당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황 박사는 사설 연구소에서 하고 싶은 연구를 하고 있으니 과학계의 상식과 관례를 뛰어넘는 징벌을 받았다는 주장은 님께서 잘못 알고 계신 것입니다.


님께서는 “장인이 명품도자기 열개 구웠다가 7개를 사고로 떨어뜨려 깼는데, 나는 열개 만들었고 모두 건재해 있다로 발표했다고 해서 그 장인에게 다시 도자기 구울 기회를 안 준다면”이라고 하셨지만 비유가 잘못됐습니다. 도자기를 만드는데 아무런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국비든 자비든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체세포핵치환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하는 데는 많은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선 인간의 난자를 얻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과배란 유도 주사를 맞고 한번에 20개 이상의 난자를 꺼내는 일은 불임이나 후유증 같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난자에 체세포의 핵을 이식하면 그것이 줄기세포가 아닌 생명체로 자라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인간의 생명윤리 문제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없습니다.


황 박사는 자신이 지녔던 국민적 인기를 바탕으로 다른 과학기술계나 종교, 윤리계의 반대를 억누르고 그 실험을 강행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설사 줄기세포가 1~2개 존재하더라도 수천 개의 난자를 사용해 줄기세포 1~2개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그것은 상업적으로 무의미합니다. 가령 2000개의 난자 가운데 1개 성공했다면 여성 100명에게서 난자를 얻어야 하는데, 그런 실험을 재현하라고 누가 강제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도자기 장인과 황 박사를 비교하는 것은 잘못된 비유입니다. 또한 님은 “더러 살아있고 더러 죽은 세포를 다 살아있다라고 발표해서 그 논문자체가 거짓 논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정하면 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황 박사는 줄기세포주가 확립되기 전에 이미 오염돼 죽은 것이므로 죽은 세포가 줄기세포로 확립됐다고도 볼 수 없습니다. 배양단계에서 죽은 것이지 확립된 줄기세포가 죽은 게 아니란 말입니다.


님께서 대학에서 생물을 공부하셨다면 상식적으로 세포의 배양이 ‘클린벤치’라는 기계 안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황 박사는 PD수첩과의 인터뷰에서 “개 사육장에서 날아온 먼지로 줄기세포가 오염됐다”거나 기자회견에서 “열악한 실험실 환경 때문에 바닥에서 먼지가 펄펄 나는 환경에서 연구했었다”고 답변합니다.


그러나 클린벤치는 외부 오염 물질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여름철 덥다고 창문을 열어놓거나 실험을 하면서 주변에 선풍기를 틀지는 않습니다. 한마디로 폐쇄되고 깨끗한 공간에서만 사용하는 게 상식인 기계입니다. 제가 대학원에 다닐 때 우리학과에서 미생물을 연구하던 한 학생은 여름철 클린벤치를 향해 선풍기를 틀고 미생물을 배양했다가 한 학기를 더 다니며 논문 실험을 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황 박사의 주장이 생물 관련 전공자에게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라는 얘깁니다. 개사육장에서 먼지가 날아올 만큼 창문을 열어둘 대학원생은 없으며 또 먼지가 풀풀나는 바닥에 클린벤치를 설치한다는 게 있을 수 없는 얘깁니다.


더불어 “그러나 크게 뻥을 쳐서 정부로부터 막대한 연구비를 혼자 독식해서 다른 과학자들보다 수십 배 많은 반복 실험을 통해 뒤 거둔 성과라면 그 연구 성과는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방법은 굳이 황 박사 아닌 다른 과학자라도 누구나 실현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라는 저의 주장에 대해 님께서는 “온 세계의 줄기세포전문가들이 돈이 없어서 반복실험을 황 박사팀만큼 못해서 복제줄기세포를 못 만드는 것이냐?”고 따지셨습니다.


물론 돈 때문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황 박사는 2004,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을 쓰기 위해 이미 2000개 이상의 인간 난자를 사용했습니다. 이건 전 세계의 다른 연구자들이 사용한 인간 난자를 합쳐도 넘을 수 없는 수치입니다. 또 국내 다른 연구자들도 이렇게 많은 난자를 가지고 반복 실험을 해본적은 없습니다. 그만큼 황 박사는 전 세계의 어느 연구자보다 혜택을 얻고 실험을 해왔다는 얘기입니다.


황 박사가 폐기처분해 진위를 가릴 수 없게 됐지만 복제소 진이와 영롱이와 관련해 과연 두 소가 복제소인지 가려낼 방법이 없으며 관련된 연구에 대한 논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래 썼던 글에서처럼 모든 과학자는 연구비를 받으면 무조건 논문으로 승부를 겁니다. 물론 공대에서는 논문이 중요하지 않는 학과가 몇 있지만 자연과학대나 수의대, 농대는 논문으로 밖에는 과학자의 업적을 밝힐 게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부나 기업에서 돈을 받으면 무조건 논문을 편 몇 썼느냐, SCI급 논문이냐가 관건입니다. 그러나 황 박사는 진이와 영롱이에 관해 어떠한 논문도 쓴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황 박사는 진이와 영롱이의 성과를 바탕으로 더 큰 연구비를 받아썼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난자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3. 노광준 피디님, 누구나 각자가 믿는 바를 따를 수 있고 지지할 수 있으니 당신의 신념도 존중합니다.


4. 바람이님, 언론의 중립을 말씀하셨는데요. 법원에서 황우석 전 교수는 “구체적인 기억은 나지 않더라도 포괄적으로 논문 조작을 지시했던 것은 맞지 않느냐”는 검찰 신문에 “구체적으로 지시한 건 아니겠지만 그런 취지로 지시한 것 맞다”고 사실 혐의를 일부 시인했습니다. 황 교수는 분명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실험결과를 원하는 실험결과로 바꿀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미즈메디-배양, 황 박사-배반포가 아니라 황 박사 알면서도 부정행위를 묵인했거나 지시했느냐입니다. 그런데 황 박사는 지시했습니다. 공판을 길게 끌 필요도 없는 사건인 것입니다.


5~6. 알아서 머하게와 과학기자님께 당신의 의견은 과학자나 언론, 일반인 누구에게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사실(fact)을 말씀하시고 가치 판단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7. 좋은시간님께 드릴 답변은 이미 위에 다른 분들을 통해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글_정서금영 기자 symbious@donga.com 

Posted by 정서금영
 

지난 21일 황우석 박사가 미국 아폴로그룹의 회장인 존 스펄링 박사의 애완견 미시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 논문은 발표되지 않았다. 아직 논문을 작성 중이라 투고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제 포털에 언론사에서 ‘줄기세포 진실’ 질긴 게임…“조사위 서명 조작” “黃의 사기극”라는 제목으로 황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공판이 23번째나 열리며 장기화되고 있다는 기사를 게재하자 아래와 같은 댓글이 누리꾼들의 추천을 받고 있어 과학기자로서 몹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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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능력있는 사람인데... [35] CCJinny님 |08.05.27 |

개복제의 제일인자... 죽은 개도 복제성공... 이미 실력이 있다는 게 입증된 상태인데도 황박사를 까고 몰아내려는 의도가 뭔가? 좀 연구 좀 하게 내버려둬라... 버러지들아.


왜 황우석 사태가 되었는지 정말 궁금하다. [8] 청국장님 |08.05.27 |

노성일 사태가 아닌가? 황우석은 핵치환하는 기술을 가졌으며 노성일은 수정란으로 줄기세포를 만드는 부분을 담당했는데 핵치환을 해서 계속 노성일에게 줬는데 줄기세포를 계속 못만들었잖아? 노성일을 족치라고!


기자야 "황의사기극"이라고 낚시질을 하니까 그리 좋더냐 [1] 천사몽님 |08.05.27 |

아직 판결이 나지 않는 사건을 마치 황박사가 사기군인 것처럼 기사제목에 인용한 것은 현혹성글로 낚시질 하려고 쓴 글 같은데 앞으로는 이렇게 쓰지마라 . 내가 지켜 보겠다.실력있는 과학자를 존경은 못할망정 사기군으로 몰아가려는 어리섞은 행동은 하지 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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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는 “황 전 교수 측은 일부 DNA 검사 결과를 부풀리고 다른 사진을 쓴 점은 인정하지만 줄기세포를 만드는 기본 기술은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구비 전용 문제도 일부를 연구 외적으로 쓰긴 했지만 관행상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반박했다.”고 게재됐다.


최소한의 상식을 지닌 과학자라면 ‘일부 DNA 검사 결과를 부풀리고 다른 사진을 쓴 점은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과학계를 떠나는 게 이치에 맞다. 누리꾼들은 황 박사가 실험을 재연해 인간체세포핵치환 줄기세포를 만들어내면 모든 것을 해명할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대학원 시절 지도교수님께서 모 학술지 편집위원이었던 관계로 나는 1년 넘게 논문 심사과정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물론 나도 대학원에 다닐 적, 그리고 졸업하고 나서 대학원 기간에 실험했던 논문을 여러편 써서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했다. 일단 학술지에 논문이 실리는 과정을 소개하겠다.


1. 연구자가 설계한 실험의 결과를 논문으로 작성해 학술지 편집위원장에게 투고한다.

2. 편집위원장은 투고한 논문의 내용을 읽고 관련 분야의 전문성을 지닌 2~3명의 심사위원에게 평가채점표와 함께 논문을 송부한다.

3. 심사위원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논문을 심사한다. 하나는 △논리의 완결성 △표와 그래프 삽입의 적절성 △주제의 참신성 같은 항목별로 채점을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논문의 원본에 ‘논술 첨삭’처럼 내용의 오류나 비논리성, 표현상의 잘못 등을 표기하는 것이다.

4. 채점을 통해 심사위원은 △즉시 게재 가능 △일부 수정 게재 가능 △대폭 수정 요망 △게재 불가 등의 형태로 판정을 내린 뒤 편집위원장에게 보낸다.

5. 편집위원장은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종합해 최종 판단하며 심사의원들의 평가가 엇갈릴 경우 추가의 심사위원을 선정해 심사를 맡긴다. 즉시 게재 가능이 아니면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논문의 투고자에게 알려 지적사항을 반박하거나 수정할 기회를 준다.

6. 투고자와 심사위원들 간에 수 차례 반박과 수긍의 과정을 거치면 마침내 논문 게재가 확정된다.


이러한 모든 과정에서 심사위원은 투고자의 논문을 재현하는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다. 모든 심사위원이 투고자가 제출한 논문에 인위적인 조작이나 변조, 위조가 없다는 가정을 전제로 심사하기 때문이다.


만약 투고자와 심사위원 사이에 믿음이 흔들린다면 어떤 심사위원도 심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더불어 인위적인 조작이나 변조, 위조가 허용된다면 어떤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 성과를 진실만으로 구성할 수 있을까.


일반인들이 ‘publish or perish’(논문을 쓰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내용을 연구실 책상이나 출입문에 붙여 놓은 교수와 대학원생을 만난다면 과학자로 살아가기 위해 논문 한편 써내는 일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적게 나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황 박사는 본인 스스로도 2004년과 2005년 사이언스에 게재된 논문에 대해 ‘일부 DNA 검사 결과를 부풀리고 다른 사진을 쓴 점은 인정’하고 있다.


학부생 때 읽었던 논문이 몇 년 뒤 대학원에서 쓰이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경우를 이공계 대학원생이라면 쉽게 접할 수 있다. 과학자의 연구 성과는 논문을 통해 인정받는 것이며, 이러한 과정이 쌓여 몇 년 뒤 학부나 대학원에서 교과서로 실릴 때 과학자는 학자로서 자부심을 얻는다.


반면 황 박사는 과학자서의 결코 회복할 수 없는 도덕성을 스스로 파기했다. 물론 이제와 황 박사가 인간체세포치환 줄기세포 복제실험에서 성공률을 높이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크게 뻥을 쳐서 정부로부터 막대한 연구비를 혼자 독식해서 다른 과학자들보다 수십 배 많은 반복 실험을 통해 뒤 거둔 성과라면 그 연구 성과는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방법은 굳이 황 박사 아닌 다른 과학자라도 누구나 실현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줄기세포의 존재 여부를 떠나 황 박사는 스스로가 인정한 ‘사기꾼’이며 그런 사기꾼에게 국민의 세금을 연구비로 지원하는 일은 세계 과학사에서 절대 없어야 할 사례다. 개 복제는 황 박사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울대 수의대 이병천 교수도 해낸 일이다.


대한민국 4700만 명이 아닌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친 과학자에 대해 “죽은 개를 복제했으니 인간체세포핵치환 줄기세포도 성공할 수 있지 않으냐”며 “실험을 재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달라”는 주장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줄기세포가 존재하든 안하든 재판에서 어떤 결론이 나든 나의 입장은 변할 이유가 없다. 그는 오염돼 존재하지 않는 줄기세포가 존재한다고 거짓된 논문을 사이언스에 투고했다. 설사 그 뒤에 새로 만든 줄기세포주가 수립됐다하더라도 그는 과학자로의 기본적인 양심을 저버린 것이다.


만약 황 박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그대로 연장시키면 이런 논리도 성립된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게 정부가 많은 돈을 빌려줘서 대우자동차, 대우건설, 대우전자 등에서 엄청난 국익을 창출했다. 비록 그가 부도를 냈지만 그는 대기업을 운영할 능력을 지닌 사람이 분명하므로 재기의 기회를 줘야 마땅하다. 어서 그에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집권기처럼 회사 설립를 위한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김우중은 국민을 속였고 대우를 속였다. 사기꾼에게 공식적인 지원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가 자식이나 지인의 도움으로 다시 사업을 재개하는 것에 대해선 누가 뭐라할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황 박사의 지지자들의 기부나 자비로 연구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한 얼마든지 찬성한다. 다만 글로벌한 사기꾼에게 대한민국의 세금을 줘서 실험을 하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사실이다.


아직도 황 박사를 두둔하는 여론이 포털을 장악한 것을 보면 과학기자로서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아 보인다.


글_정서금영 기자 symbious@donga.com

Posted by 정서금영

화사한 햇살이 유리창을 넘어 그녀의 볼에 와 닿았다. 그녀가 수줍은 미소를 띤 채 눈치를 살피고 있다. 도톰한 입술이 쭈뼛쭈뼛,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눈빛도 초롱초롱 빛나고 있다. 하지만 연인과 사랑을 속삭이기엔 너무나 생뚱맞은 장소다.


그녀를 관찰하고 있는 곳은 어떤 학회가 주최하는 춘계 학술대회장이다. 대학원에서 ‘짬밥’을 먹었던 기자는 한 눈에 그녀가 대학원 새내기라고 짐작했다. 구두 발표가 아니고서야 포스터 발표를 하는 사람이 정장을 곱게 차려 입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지랖이 넓은 기자는 곧장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석사 1학기 째죠?”, “헉! 그걸 어떻게….”, “제가 첫 관람객인 듯 싶은데, 연구 내용 좀 소개해 주세요.” 대부분의 포스터 발표가 그러하듯 관람객은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다른 대학 교수나 대학원생이 대다수다. 하지만 이런 장소에 처음 온 그녀로선 실험실 선․후배밖에 질문해줄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이 때문일까? 그녀는 기자에게 또박또박하고 친절한 어조로 포스터에 나열된 연구주제와 서론, 재료 및 방법, 실험결과, 고찰을 설명해줬다. 이에 기자는 되물었다. “이 실험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거죠?”, “왜 이 실험을 하게 된 겁니까?”


잠시 머뭇거렸던 그녀는 “대학원 합격통보를 받은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연구한 내용을 (본인이) 정리했을 뿐”이라며 “이 연구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 아직 모른다”고 답했다. 연구발표자도 해당 연구의 의미를 모른다면 누구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말인가?


대학원생 가운데는 입학할 때 지녔던 포부와 달리 실험실 생활에 파묻혀 꿈과 야망, 실험의 의미조차 망각하곤 한다. 자신의 연구가 학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실험을 확장해 박사 이후에는 어떤 연구가 이어질 수 있을지 고민하기도 솔직히 벅차다. 하지만 연구자 스스로 어디를 향해 가는지 모르면서 좋은 연구 성과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에 대해 4월 20일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한 최진호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성적 우수자가 뛰어난 연구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며 “시험에 나올 문제의 답을 외우는 것과 실험한 결과를 해석하는 능력은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과학은 지식을 암기하는 학문이 아니라 인간의 궁금증을 해결하는 과정이다. 그만큼 기존의 지식을 뛰어넘는 창의적인 사고훈련이 돼 있어야 한다. 실험에 몰두하고 있는 당신, 그대가 작성하고 있는 논문의 의미는 무엇인가?


글_정서금영 기자 symbious@donga.com 

*이 글은 고대대학원신문 2007년 5월호 ‘호원춘추’란 코너에 실린 칼럼입니다.

Posted by 정서금영

*이 글은 고대대학원신문 2008년 3월호 ‘호원춘추’란 코너에 실린 칼럼입니다.


본교 대학원에 진학하신 후배님의 입학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여러분의 대학원 선배이자 과학기자로서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공계 신입생 가운데는 벌써 지난해 대학원 합격자 발표가 났을 때부터 실험실 생활을 시작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이공계 대학원생의 일상은 개인 시간이 부족하고 실험 일정이 빽빽합니다. 청운의 꿈을 갖고 학문에 정진하는 대학원생이라면 누구나 석∙박사 학위를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학원 생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고려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누구나 똑같은 대우를 받지는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만약 학부 시절 성적이 우수했더라도 그때의 ‘자만감’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학부에서는 시험에 나올 지식을 외우면 사회가 원하는 인재로 대접받습니다. 반면 대학원에서는 독창적인 실험을 설계하거나 평범해 보이는 결과를 창의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이 높이 평가됩니다.


예를 들어 2월 22일 제가 택시를 탔습니다. 그런데 운전기사가 “우리나라는 여름철 번개가 많이 발생하는데, 번개를 모아 전기를 생산하는 과학자는 없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일반인이라면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번개를 어떻게 모은다는 말인가”라고 웃어넘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과학자라면 다른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번개가 칠 때의 전기량은 1회에 전류 수만A(암페어)다. 만약 5000A의 벼락이 내리친다면 100W의 전구 7000개를 8시간 동안 켤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사람이 바로 ‘과학자’입니다.


1980년대 말 휴대전화의 운영시스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의 교수로 채용된 과학자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휴대전화뿐 아니라 무선호출기도 사용되지 않던 시절입니다. 정부나 기업 어디에서도 연구비를 지원하지 않자 그는 전공을 바꿨습니다. 음악이나 동영상 같은 디지털 콘텐츠에 암호를 집어넣는 ‘정보은닉’ 기술을 선택한 것입니다.


1995년 ‘정보은닉’과 관련해 논문을 검색하자 전 세계에 단 1편이 있었다고 합니다. 1997년 그도 1편의 연구 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했을 때 전 세계에 10편의 논문이 나왔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 최고과학자가 됐습니다. 지금 ‘돈벌이 잘되는 학문’보다는 ‘미래를 위한 학문’에 여러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기 바랍니다.


글_정서금영 기자 symbious@donga.com

Posted by 정서금영

어제 이소연씨가 탄 소유스 로켓이 발사하는 장면을 감동적으로 봤습니다.
우주인을 꿈꿨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계속 취재기사를 썼던 기자로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라구요.
특히 소연씨 어머니가 발사 장면을 보면서 '소연아~, 소연아~'하며 울부지으시던 장면이 인상깊었습니다.지축을 흔드는 굉음을 내며 하늘로 솟구친 괴물같은 우주선에 딸이 실려 올라가니 많이 놀라시기도 하셨을겁니다.
저도 그동안 수없이 로켓발사 장면을 봐왔지만, 가까운 사람이 저 안에 들어 앉아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정말 다르더군요. 현장에서 직접 보지못한 것이 너무나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물론 무사히 우주로 올라가길 바랐지만 솔직히 큰 걱정은 안되었습니다. 러시아의 소유스 FG 로켓은 이미 안전성이 검증된 우주선이니까요. 발사장면을 보며 정말 러시아라는 나라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만든 우주선에 우리 우주인을 처음 태워 보낼 때는 정말 긴장이 많이 하겠죠.

오늘 아침 발사 소식을 전하는 여러 언론매체의 기사를 봤습니다. 그리고 역시 거기에 달린 리플들을 봤죠. 우주인 사업을 시작한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악플의 내용은 똑같습니다. 우주관광객이라는 주장이 대부분이죠. 100%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100% 맞는 내용도 아닙니다.
미국이나 러시아는 expedition의 주 임무인 ISS 건설에 참여하지 않는 우주인을 부를 때 participant라 부릅니다. 커맨더, 엔지니어, 페이로드 미셔니스트 라는 구분은 ISS건설에 국한시켜 구분하는건데, 우리나라는 ISS회원국도 아니고 건설 임무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participant로 구분하는 거 같습니다. 다만 국가간 계약에 따라 이뤄졌고, 또 나름의 국가적 임무를 갖고 있는 우주인을 개인적 차원의 단순 우주관광객과 똑같이 participant로 구분하는게 애석할 따름입니다.

그다음 많이 하는 비판점은 '지나친 호들갑'이라는 겁니다. 사실 정부관계자나 전문가들 가운데 이번 우주인배출이 '이벤트'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번 이벤트를 의미있는 이벤트로 제대로 꾸미고 있는지를 잘 살펴봐야 할 겁니다. 중요한 건 이번 우주인 배출이 유인우주개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을 알리는 이벤트라는 점인데, 나중에 제대로 된 이벤트였다고 평가받으려면, 이 사업의 의미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앞으로 이 경험을 어떻게 활용할지 많이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Posted by 안기자

과학자의 목소리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과학기자인 저는 한때 정치계에 몸담았습니다. 후훗. 서른 살밖에 안된 제가 “무슨 정치계에 몸담았냐?”고 항의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국회 모 의원실에서 과학기술 정책을 담당하는 비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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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목소리를 현실세계에 반영하려면 과학자가 직접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래서 정치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되는지, 민주주의는 어떻게 설계해야하는지 몸소 체험했었죠.


지난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홍창선 전 KAIST 총장을, 한나라당은 서상기 전 한국기계연구원장을 비례대표로 영입했습니다. 과학기술이 사회적으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숫자입니다. 그래서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와 바른과학기술사회실현을위한국민연합(과실연)은 이번 총선에서 “과학기술계 비례대표를 20% 배정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의∙약학 분야를 포함해 원내 4당 당적을 가진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는 모두 35명, 전체후보의 5% 수준이었습니다. 그나마 순수한 과학기술자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은 한나라당 비례대표 29번 최순자 인하대 생명화학공학과 교수가 유일했습니다.


나머지는 대부분 의사나 약사, 간호사협회 회장이나 부회장이었고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17번 김진애 KAIST 미래도시연구소 겸직교수는 연구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고 건축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과학자보다는 엔지니어라 할 수 있죠.


과총 뉴스레터에 따르면 과총과 57개 과학기술 관련단체는 두 차례에 걸쳐 성명과 보도자료를 내고 “지역구와 비례대표 공천에 있어 과학기술인을 10% 이상 안배해야 한다”고 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을 방문해 각 단체의 서명이 담긴 건의문을 직접 전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번 비례대표 후보 공천을 맡았던 여야 정당의 관계자들은 이같은 목소리를 전혀 전해 듣지 못했다고 하네요. 다음은 뉴스레터에 실린 기사의 일부 내용입니다.


민주당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회의 간사를 맡았던 김주영 의원은 “다른 분야에서는 성명서나 서명서를 전달 받았고, 통일∙안보 분야에 있어 정치적인 안배가 있었다”며 “하지만 과학기술계로부터는 이런 움직임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비례공천의 실무를 맡았던 당무조정국 관계자는 “과총을 비롯한 과학기술계가 비례대표 공천과 관련해 성명을 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나라당 비례대표 추천에 있어 특정 직능에 대한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고는 보지 않으며 과학기술계를 배제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비례대표 공천은 최고위원회에서 직접 이뤄졌기 때문에 기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밝혔다.


과학기술계에서는 분명 전달했는데, 실제 공천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받지 못했다? 과학기술계와 정치계가 얼마나 소통이 안 되는지 확인시켜주는 대목입니다.


과학기술계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행정조직 개편 때 과학기술부의 해체를 반대하며 정치계에 심판(?)을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과연 어떤 심판을 한다는 얘기일까요?


과실연은 지난 3월 12일 ‘과학기술 최우수 17대 국회의원’을 선정했습니다. 지난 4년간 과학기술 관련 입법 및 법개정에 적극 나서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정책제안과 제도개선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평가된 사람을 선정했다고 밝혔습니다. 다음은 선정된 국회의원 명단입니다.


△김영선(한나라당) : 과학기술방송입법 추진. 사이언스 채널 활성화 기여.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으로 개인 사생활 보호. 정보통신대 법적지위 보장

△박근혜(한나라당) : 발명진흥법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발의. 대구테크노폴리스와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연구원 설립추진. 이공계 출신 국가 지도자로서 과학기술혁명 7대 전략 제안.

△서상기(한나라당) : 과학기술공제회 예산확보. 기술사 지원제도 개선. 지방R&D특구 지정

△변재일(통합민주당) : 과학기술기본법 개정, 기초연구진흥회 설립. 정보화촉진 기본법 개정. 전파자원의 효율적이고 공평한 이용을 촉진.

△유승희(민주당) : 통신요금 거품을 분석해 요금인하 주도. 여성과학기술인들의 숙원사업이던 대덕영유아 보육센터 설립.

△이상민(민주당) : 과기부 정통부 폐지하는 정부조직개편에 맞서 민주당 공청회 주도. 대덕특구 연구환경 개선.

△이종걸(민주당) : UCC 소프트웨어 전파법 전기통신사업법 등 IT관련 법안의 개정 주도. CID 요금무료화, SMS 요금인하 관철

△홍창선(민주당) : 의료 바이오분야, 우주개발, 방송통신 융합 관련 법안들의 발의, 테크노닥터 사업 추진. 국회의원 연구단체 ‘사이앤텍포럼’ 운영.


개인적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상임위(과기정위)에 몸담았던 저로서는 박근혜, 유승희, 이종걸 의원의 선정은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국회의원은 일반상임위와 특별상임위를 하나씩 맡게 되는데, 저는 과기정위 소속 의원실에서 근무했었습니다.


YTN이 사이언스TV를 개국했는데, 대다수 의원들이 사업성을 논하며 안 된다고 할 때 ‘독불장군’처럼 과학기술방송입법을 주장한 김영선 의원이나 기계공학 박사를 보좌관으로 둬서 기초연구진흥회 설립 같은 것을 주도한 변재일 의원, 대학원생의 연구환경을 개선한 연구실 안전관리법을 발의한 이상민 의원은 선정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4년 연속 시민단체가 선정한 국감 베스트 5에 선정된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이나 민주당 강성종 의원도 국회 전문위원들에게 물어보면 분명 ‘과학기술 최우수 17대 국회의원’에 선정돼야 한다는 답변이 나올겁니다.


아마도 정치적인 영향력을 고려해 박근혜 의원이 포함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신뢰할 수 없는 결과를 내보내서는 과학기술계가 힘이 실린 목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지표로 국회의원을 평가해야 합니다. 또 낙선운동을 벌일 만큼 단합된 힘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과학기술인을 한데 모으기는 쉽지 않습니다. 지난번 과학기술 분야 비례대표로 영입된 홍창선 의원은 후보등록을 하지 않았고 서상기 의원은 대구 북을 지역구로 출마합니다. 지역구로 출마한다면 과학기술인으로서 평가받기 어렵습니다.


다만 자유선진당으로 출마한 이상민 의원은 비록 과학기술인은 아니지만 대덕특구에 거주하는 과학기술인에게 평가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과학기술인이 국회에 대거 등원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합니다.

글_정서금영 기자 symbious@donga.com

Posted by 정서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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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에서 열역학(thermodynamics)은 알쏭달쏭한 분야다. 엔탈피, 엔트로피, 기브스 자유에너지 등 용어부터 예사롭지 않다. 유클리드 기하학에 기본 공리 5개가 있듯이 열역학에는 4개의 기본 법칙이 있다. 열역학 제0법칙은 “물체 A와 B가 다른 물체 C와 각각 열평형을 이루었다면 A와 B도 열평형을 이룬다”로 요약된다. 바꿔 말하면 온도가 같은 물체 사이에는 열이 한쪽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의미다.


열역학 제1법칙은 “계의 내부에너지 변화는 계가 흡수한 열과 계가 한 일의 차이다”로 기술된다. 식으로 표현하면 ‘E=Q-W’로 열과 일은 에너지의 다른 모습일 뿐이라는 놀라운 통찰력이 들어있다. 독일의 물리학자 루돌프 클라우지우스가 1850년 발표한 이 수식은 열역학의 출발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열역학 제1법칙은 에너지 개념을 이해하면 직관적으로 명쾌하기 때문에 다양한 현상에 바로 적용할 수 있다. 우리 몸을 하나의 계(system)로 보면 “체중은 섭취한 칼로리와 몸이 활동으로 소모하거나 배설한 칼로리의 차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의 뼈와 거죽만 남은 처참한 수용자 사진이 보여주듯이 계(사람)가 기본적인 활동으로 소모하는 칼로리보다 들어오는(먹는) 게 부족하면 서서히 살이 빠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배고픔의 공포에서 벗어난 현대인의 모습이다. 똑같이 배고플 때 먹고 남들 일어날 때 일어나고 잘 때 자는데도 계의 상태는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홀쭉하고 누구는 둥글둥글하다. 어떤 사람은 10년이 지나도 체중이 별 차이가 없는데 누구는 해가 바뀔 때마다 혁대 구멍이 하나씩 밀린다. 날씬한 게 좋게 보이는 시대다보니 상당수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살을 빼려는 노력, 즉 다이어트를 감행한다.


‘좀 덜 먹으면 되지 뭘 그렇게 야단인지….’ 날씬하게 타고난 사람들은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서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린 왜 먹을까. ‘그걸 질문이라고…. 배가 고프니까 먹지!’ 당연한 대답이다. 그러나 여기에 뭔가가 있다. 배가 고프다는 ‘느낌의 강도’가 실제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의 양과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식욕은 개인차가 있고 쉽게 왜곡될 수 있는 본능이라는데 비극이 있다.


식욕은 어떻게 조절될까. 수많은 연구자들이 매달린 결과 큰 그림은 나와 있는 상태다. 즉 렙틴과 그렐린이라는 호르몬이 식욕을 관장하는 연출자다. 주로 지방 조직에서 분비되는 렙틴은 음식 섭취를 억제하고 대사율을 조절해서 체중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그렐린은 주로 위에서 분비되는데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장본인이다. 결국 렙틴과 그렐린의 시소가 식욕과 대사율을 조절해 체중을 결정한다. 심각한 비만인 사람들 가운데는 몸이 렙틴의 신호를 무시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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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섭취한 음식이 렙틴과 그렐린 분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파악하면 좀 더 효과적인 다이어트법이 나오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나왔다. 같은 칼로리의 지방이나 탄수화물에 비해 단백질을 섭취했을 때 그렐린의 수치가 많이 떨어졌다. 즉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면 한동안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 지방은 그렐린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제일 적었고 탄수화물은 처음에는 효과가 크나 곧 그렐린 수치가 올라갔다. 파삭한 닭 가슴살 보다는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삼겹살이나 달콤한 케익을 좋아하는 사람이 다이어트에 성공하려면 식성을 바꾸는데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글_강석기 기자



Posted by 목정민

미뇽의 노래

과동칼럼 2008/01/10 10:27

미뇽의 노래

 

Kennst du das Land, wo die Zitronen bluhn,

(당신은 아시나요, 저 레몬꽃 피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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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음색을 지닌 소프라노 바바라 보니 여사가 1994년 녹음한 슈베르트 가곡 CD를 가끔 듣는다. 독일어를 몰라서인지 노래를 들을 때마다 독일어를 알아들을 수 있으면 훨씬 더 감동적일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기자가 이 CD에 더 애착을 느끼는 것은 괴테의 시를 가사로 한 작품 열 곡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네 곡은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왔는데 미뇽의 노래(Mignon-Lieder)로 불린다.


프랑스어로 귀여운 아이라는 뜻의 미뇽은 작품에 등장하는 유랑극단 소속의 어린 소녀다. 달걀춤이라는 독특한 춤을 추는 이 아이는 춤추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모진 매를 맞는데 이를 보다 못한 청년 빌헬름(괴테의 분신)이 아이를 사서 돌보게 된다. 그 뒤 빌헬름에게 모든 애정을 바친 소녀는 비극적으로 생을 마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파우스트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지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는 삶과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하는 독일 교양소설의 전범이다.


48세 연상의 괴테를 동경해온 슈베르트는 그의 시에 곡을 붙인 작품을 보냈으나 괴테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깊이 감동한 슈베르트는 미뇽이 부른 것으로 묘사돼 있는 시들에 여러 가지 버전의 곡을 만드는 등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괴테보다 4년 앞서 31세에 매독에 걸려 요절했지만 그가 남긴 곡은 미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