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뇽의 노래
Kennst du das Land, wo die Zitronen bluhn,
(당신은 아시나요, 저 레몬꽃 피는 나라?)
….
단정한 음색을 지닌 소프라노 바바라 보니 여사가 1994년 녹음한 슈베르트 가곡 CD를 가끔 듣는다. 독일어를 몰라서인지 노래를 들을 때마다 독일어를 알아들을 수 있으면 훨씬 더 감동적일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기자가 이 CD에 더 애착을 느끼는 것은 괴테의 시를 가사로 한 작품 열 곡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네 곡은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왔는데 ‘미뇽의 노래’(Mignon-Lieder)로 불린다.
프랑스어로 ‘귀여운 아이’라는 뜻의 미뇽은 작품에 등장하는 유랑극단 소속의 어린 소녀다. 달걀춤이라는 독특한 춤을 추는 이 아이는 춤추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모진 매를 맞는데 이를 보다 못한 청년 빌헬름(괴테의 분신)이 아이를 사서 돌보게 된다. 그 뒤 빌헬름에게 모든 애정을 바친 소녀는 비극적으로 생을 마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파우스트’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지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는 삶과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하는 독일 ‘교양소설’의 전범이다.
48세 연상의 괴테를 동경해온 슈베르트는 그의 시에 곡을 붙인 작품을 보냈으나 괴테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깊이 감동한 슈베르트는 미뇽이 부른 것으로 묘사돼 있는 시들에 여러 가지 버전의 곡을 만드는 등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괴테보다 4년 앞서 31세에 매독에 걸려 요절했지만 그가 남긴 곡은 ‘미뇽’을 불멸의 캐릭터로 만들었다.
그런데 요즘 미뇽이란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사라진 아이들 때문이다. 보름이 넘게 지났지만 이 실종사건에 대한 실마리조차 잡을 수 없다고 한다. 이 아이들이 사는 곳은 안양8동으로 기자가 사는 안양9동의 옆 동네다. 안양에는 동쪽에 웅장한 관악산과 서쪽에 아담한 수리산이 마주보고 있다. 기자는 주말이면 즐겨 수리산을 찾는다. 안양8동과 9동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산을 내려오다 보니 의경들이 2-3미터 간격으로 늘어서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는 산을 쇠 꼬챙이로 쿡쿡 찌르며 올라가고 있다. 혹시 아이들이 산에 놀러 갔다 조난됐을 수 있기 때문이다. TV에서나 가끔 보던 모습을 눈앞에서 마주치니 가슴이 철렁한다. 동네 곳곳에는 전단지가 붙어있고 현수막도 걸려있다. 당분간은 수리산을 찾지 않을 것 같다.
본시 이탈리아에서 살았던 미뇽은 집시들에게 납치돼 유랑극단에 팔려 독일까지 흘러왔다. 돈 몇 푼에 한 소녀의 삶이 빛을 잃은 것이다.
2월호 기사로 ‘행복의 과학’에 대해 준비하고 있지만 마음은 행복하지가 않다. 현대 심리학과 신경생리학이 아무리 최신 행복 이론을 내놓더라도 지금 부모와 주위 사람들에게 최고의 행복은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오는 것이다. 미뇽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불렀던 노래 ‘당신은 저 나라를 아시나요’(Kennst du das Land) 전문이다.
당신은 아시나요, 저 레몬꽃 피는 나라?
그늘진 잎 속에서 금빛 오렌지 빛나고
푸른 하늘에선 부드러운 바람 불어오며
협죽도는 고요히, 월계수는 드높이 서 있는
그 나라를 아시나요?
그곳으로! 그곳으로
가고 싶어요, 당신과 함께, 오 내 사랑이여!
당신은 아시나요, 그 집을? 둥근 기둥들이
지붕을 떠받치고 있고, 홀은 휘황찬란, 방은 빛나고,
대리석 입상(立像)들이 날 바라보면서,
‘가엾은 아이야, 무슨 몹쓸 일을 당했느냐?’고
물어주는 곳,
그곳으로! 그곳으로
가고 싶어요, 당신과 함께, 오 내 보호자여!
당신은 아시나요, 그 산, 그 구름다리를?
노새가 안개 속에서 제 갈길을 찾고 있고
동굴 속에선 해묵은 용들이 살고 있으며
무너져 내리는 바위 위로는 다시
폭포수 쏟아져 내리는 곳,
그곳으로! 그곳으로
우리의 갈길 뻗쳐 있어요. 오 아버지, 우리 그리로 가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1’, p221-222, 안삼환 옮김, 민음사
글_강석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