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12월 11일 태안반도 원유 유출 현장에서 한국해양연구원 남해연구소 임운혁 박사팀을 만났다. 하루전날 밤 만리포에 도착한 임 박사팀은 새벽부터 만리포와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로 이어지는 해안을 뒤지며 오염된 토양과 생물을 시료로 채집했다.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초기시료를 확보해둬야 나중에 원유 유출이 생태계에 미친 영향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다. 또 오염이 얼마나 정화됐는지 비교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어민들이 보험사로부터 적절히 보상받기 위해서는 오염 정도와 피해 면적을 파악하고 이를 증거로 남겨둬야 한다. 폐사한 굴이나 우럭, 광어를 그냥 버릴 게 아니라 연구용 표본으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촌계에 일일이 수소문해 피해 어장을 찾아다니던 임 박사 일행은 겨우 네 명. 인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했기에 그들에게 하루 24시간은 24분처럼 빨리 흘러갔다. 차가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폐사한 물고기 수십 마리에서 시료로 쓸 쓸개를 채취하다보니 그들의 몸은 꽁꽁 얼어붙었다. 기자도 수첩을 들고 바라보고만 있기가 민망해 시료 병에 숫자를 쓰는 ‘업무’를 거들었다. 시료 29개가 확보된 뒤 비로소 기름 냄새 풍기는 물고기들은 ‘편안히’ 땅에 묻힐 수 있었다.
만리포에서 임 박사팀을 만난 지 1주일 뒤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해양수산부에서 임 박사팀을 태안 사고현장의 생물영향평가를 수행할 연구기관으로 선정한 것. 그전까지는 관심 있는 과학자들을 모아 알음알음 태안을 찾는 수준에 머물러있었다.
현재 만리포에 상황실을 설치한 임 박사팀은 한국해양연구원의 연구조사선을 타고 태안 근해까지 나가 연구조사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원유 유출로 망가진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에는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고의 ‘기억’을 수집하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여담 하나. 만리포에서 스치듯 소설가 김훈을 만났다. 커다란 장화를 손에 들고 야구 모자를 눌러 쓴 그는 자원봉사도 하고 현장취재도 할 겸 왔다고 했다. 우연인지 그 날 노무현 대통령도 만리포를 찾았는데, 장화를 든 소설가와 고급승용차에 수십 명의 경호원을 대동한 대통령이 묘한 대조를 이뤘다.
※임 박사팀은 태안의 피해 상황을 촬영하고 스케치할 자원봉사자를 구하고 있다. 피해지역을 구석구석 다니며 조사하기에는 현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반드시 사진과 그림에 조예가 깊을 필요는 없으며 한국해양연구원 과학자들과 함께 현장을 누리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다. 자원봉사자에게는 소정의 봉사료가 지급된다.
※연락할 곳
임운혁 박사 e메일: uhyim@hotmail.com
신방실 기자 e메일: weezer@donga.com
* 태안반도를 뒤덮은 검은 그림자 동영상(촬영_강석기 기자)
- 파도에 밀려온 검은 띠가 보이시나요. 바다 위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가 무섭습니다.
고무장화를 신고 고무장갑을 끼고..그 그림자와 사투를 벌이는 자원봉사자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태안의 현장으로 같이 떠나보실까요~(재생 버튼을 누르면 영상이 시작됩니다)